시편 묵상집

시편 12편 - 공허한 말들의 세상에서 진리를 찾아서

새벽녁 2025. 4. 29. 19:32

주님, 도와주십시오. 신실한 사람도 끊어지고, 진실한 사람도 사람 사는 세상에서 사라졌습니다.

시편 12편1절

I. 서론: 말의 홍수 속, 공허한 외침의 메아리

현대 사회는 가히 말의 홍수 시대라 할 만합니다. 소셜 미디어, 뉴스 매체, 일상의 대화 속에서 끊임없이 쏟아지는 언어의 양은 방대하지만, 그 속에서 진정한 소통, 신뢰할 수 있는 진실, 깊이 있는 관계를 찾기란 점점 더 어려워지는 듯합니다. 일상적인 욕설의 남용이나 피상적인 소통에 대한 우려는 이러한 현대적 불안감을 반영합니다. 놀랍게도, 이러한 오늘날의 공허함과 불안은 수천 년 전 기록된 시편 12편의 고대 외침 속에서 깊은 메아리를 발견합니다.

시편 12편은 전통적으로 다윗의 시로 알려져 있으며 , 아마도 사울 왕 통치 말기와 같이 도덕적, 사회적 부패가 만연했던 시기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 시는 특정 시대에 국한되지 않고, 인간 사회가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기만과 불신, 그리고 그 속에서 터져 나오는 신성한 도움을 향한 갈망을 다루는 보편적인 탄식시(탄원시)입니다. 시편 12편은 단순히 고대의 문서가 아니라, 언어의 타락과 진실의 실종이라는 영원한 인간적 투쟁에 대해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숨 쉬며 말을 건네는 텍스트입니다.

이 글은 시편 12편의 깊이를 탐구하며, 언어의 부패와 사회적 해체에 대한 시인의 절규를 성서학적 통찰과 신학적 성찰을 통해 조명하고자 합니다. 특히 언약적 신실함(חֶסֶד, 헤세드)과 진실(אֱמֶת, 에메트)의 중요성, 이 가치들의 부재가 가져오는 파괴적인 영향, 억압받는 자들을 위한 하나님의 개입 약속, 그리고 거짓이 판치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순결한 말씀이 지니는 닻과 같은 힘을 살펴볼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비열함이 존경받는"(시 12:8, 새번역) 세상에서 신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성찰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흥미롭게도, 이 글의 모태가 된 텍스트의 다소 산만하고 대화적인 스타일은 역설적으로 시편 12편이 비판하는 현대 사회의 언어적 혼란, 즉 '소음'을 반영하는 듯 보입니다. 개인적인 일화와 성경 해석, 사회 비평이 명확한 구조 없이 오가는 모습은 피상적이고 단절적인 소통 방식과 닮아 있습니다. 시편 12편 자체가 혼란스러운 인간의 말과 정련되고 신뢰할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조시킨다는 점에서 , 이 텍스트를 보다 구조화되고 학문적인 글로 재구성하는 작업은 그 자체로 시편의 핵심 주제, 즉 혼돈스러운 인간의 언어에서 벗어나 신적인 명료함과 질서를 추구하는 행위를 방법론적으로 반영하는 시도라 할 수 있습니다.

II. "여호와여 도우소서!": 언약적 삶의 기초가 흔들릴 때 (시편 12:1-2)

시편 12편은 "여호와여 도우소서!"(הוֹשִׁיעָה יְהוָה)라는 강렬하고 다급한 외침으로 시작합니다. 히브리 원문은 설명보다 간구가 앞서는 구조로, 극도의 위기 상황에서 터져 나오는 절박함을 보여줍니다. 시인은 '나를' 또는 '우리를' 도우소서라고 특정하지 않음으로써, 이 탄식이 개인을 넘어 공동체 전체, 나아가 시대 전체의 비참한 상태를 향한 절규일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이 절박한 부르짖음의 이유는 곧바로 이어집니다.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כִּי־גָמַר חָסִיד) "충실한 자들이 인생 중에 없어지나이다". 여기서 '끊어지다'(גָּמַר, 가마르)와 '없어지다'(פָּסַס, 파사스)에 사용된 히브리어 완료 시제는 이들이 이미 사라졌고, 그 부재가 현재 상황을 규정하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경건하고 충실한 이들의 소멸은 단순한 개인의 상실을 넘어, 사회를 지탱하는 근간의 붕괴를 의미합니다.

이 위기의 핵심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건한 자'(חָסִיד, 하시드)와 '충실한 자'(אֱמוּנִים, 에무님)라는 두 히브리어 단어의 의미를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 하시드 (경건한 자/하나님께 충성된 자): '하시드'는 '헤세드'(חֶסֶד)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헤세드'는 단순한 친절을 넘어, 하나님의 언약에 기초한 변함없는 사랑, 자비, 충성심을 의미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향해 보여주시는 성품이자 관계적이고 공동체적인 행동을 내포하는 개념입니다. 따라서 '하시드'는 이러한 '헤세드'를 삶으로 구현하는 사람, 즉 하나님과 언약 공동체에 충실하며, 진실함과 친절, 신실함으로 행동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 자기를 제압하고 온통 바치는 사람', '누군가에게 품이 되어 줄 수 있는 사람', 즉 판단 없이 있는 그대로 상대를 맞아주는 사람으로 묘사될 수 있습니다.
  • 에무님 (충실한 자/믿을 만한 자): '에무님'('에문'의 복수형)은 '에메트'(אֱמֶת)와 관련된 단어입니다. '에메트'는 진실, 진리, 신뢰성, 견고함, 안정성을 의미합니다. 이는 예배 시 확신과 동의를 표현하는 "아멘"(אָמֵן)과도 연결되어, 확실성과 긍정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에무님'은 하나님 자신의 신실하심을 반영하여, 신뢰할 수 있고 의지할 만하며, 삶 전체가 진실함과 정직함으로 특징지어지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속과 겉이 일치하는 사람'(안팎이 일치되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이 중요한 개념들을 명확히 하기 위해 다음 표를 제시합니다. 이 표는 독자들이 히브리어 용어의 의미와 그 연관성을 쉽게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이 용어들은 시편 12편 1절의 핵심이며, 단순한 번역 이상의 신학적 무게를 지닙니다. 표는 이 개념들을 시각적으로 분리하고 정의함으로써, 특히 히브리어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하시드/헤세드'와 '에무님/에메트' 사이의 중요한 연결, 즉 충성스러운 사랑과 신뢰할 수 있는 진실의 상호 연관성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구조화된 정보 제시는 글의 학문적 깊이를 더하는 동시에 독자의 이해도를 높이는 데 기여할 것입니다.

히브리어 용어
음역
시편 12편 문맥상 의미
관련 개념
חָסִיד
하시드 (Hasid)
경건한 자, 신실한 자 (헤세드를 실천하는 사람)
헤세드
חֶסֶד
헤세드 (Hesed)
언약적 충성, 인자, 자비, 사랑
하시드, 에메트
אֱמוּנִים
에무님 (Emunim)
충실한 자들, 믿을 만한 자들 ('에문'의 복수)
에메트, 아멘
אֱמֶת
에메트 (Emet)
진실, 진리, 신뢰성, 견고함, 성실함
에무님, 헤세드

 

이처럼 '하시딤'과 '에무님'이 사라진 결과는 2절에 즉시 나타납니다. 사회는 "헛된 것"(שָׁוְא, 샤우 - 공허, 거짓)과 "아첨하는 입술"(שְׂפַת חֲלָקוֹת, 스파트 할라코트 - 매끄러운 말, 아첨), 그리고 "두 마음"(בְּלֵב וָלֵב, 벨레브 발레브 - 문자적으로 '마음과 마음으로')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이웃 간의 관계는 거짓으로 얼룩지고("각기 이웃에게 거짓을 말하며"), 이러한 언어적 부패는 일상적이고 지속적인 현상이 됩니다 ('말하다' - יְדַבְּרוּ, 예다베루 - 미완료 시제 사용). 일본어의 '혼네'(속마음)와 '다테마에'(사회적 체면)의 구분은 이러한 이중성과 유사한 맥락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결국, '하시딤'과 '에무님'의 소멸은 단순히 좋은 사람들이 줄어드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 안에서 건강한 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관계적 충성심과 진실성이라는 토대 자체가 무너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헤세드'와 '에메트'는 하나님의 핵심 속성이자 언약 관계의 근간인데 , 이 가치를 구현하는 이들의 부재는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 단절을 의미합니다. 그 직접적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2절의 언어적 혼란입니다. 관계와 사회의 생명선인 소통이 거짓과 아첨으로 오염되는 것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선 시스템적 위기의 징후이자 촉매제인 것입니다.

III. 오만한 혀: 말을 무기 삼는 자들 (시편 12:3-4)

시인은 이러한 언어적 부패를 일으키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간구합니다. "여호와께서 모든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끊으시리니"(3절). 이는 단순한 분노의 표출이 아니라, 파괴적인 힘을 가진 거짓된 말의 근원을 제거해 달라는 신적인 개입 요청입니다.

4절은 악인들의 사고방식을 직접 인용하며 그들의 오만함을 폭로합니다.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의 혀가 이기리라(נַגְבִּיר, 나그비르) 우리 입술은 우리 것이니(לָנוּ, 라누 - 우리에게 속한 것) 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리요(מִי אָדוֹן־לָנוּ, 미 아돈 라누)". 이 말 속에는 그들의 세계관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 "우리의 혀가 이기리라": 그들은 진실이 아닌, 교묘하고 힘 있는 말이 승리를 가져다준다고 확신합니다. 언어는 진리를 담는 그릇이 아니라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도구일 뿐입니다.
  • "우리 입술은 우리 것이니": 이는 자신들의 말에 대한 완전한 소유권과 자율성을 주장하며, 어떤 외부 권위나 책임도 거부하는 태도입니다. 도덕적, 신적 제약으로부터의 독립 선언입니다. 이는 혀나 입술이 그들의 '재산' 또는 세상을 마음대로 갈아엎는 '보습'과 같다는 생각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 "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리요?": 이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정면 도전이며, 실천적 무신론의 발현입니다 .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과 말에 대한 궁극적인 책임을 부정합니다.

악인들은 이처럼 언어를 무기화합니다. 아첨(חֲלָקוֹת, 할라코트)은 상대를 조종하고 이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됩니다. 자랑(גְּדֹלוֹת, 게돌로트 - 큰 것들)은 그들의 교만과 자기 의존성을 드러냅니다. 그들의 말은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거짓된 현실을 구축합니다. 이는 본래 관계를 잇고 아름답게 만들어야 할 언어의 목적과는 정반대입니다.

시편 12편의 악인들은 자신들의 언어적 능력에 신적인 힘을 부여하는 일종의 우상숭배를 보여줍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말이 현실을 창조하고 궁극적인 통제권을 부여한다고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주권과 그분 안에 근거한 객관적 진리를 거부합니다. 우상숭배의 본질은 참 하나님 외의 다른 것에 궁극적인 힘과 권위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악인들은 자신들의 혀가 "이기리라"(4절)고 주장하며, 자신들의 말에 결정적인 힘이 있다고 선언합니다. 또한 "우리 입술은 우리 것", "누가 우리를 주관하리요"라고 외치며 명백히 외부적(신적) 권위를 부정합니다. 이는 창조주에 대한 피조물의 한계와 책임을 거부하는 우상숭배의 핵심 유혹과 일치합니다. 결국, 교묘한 언어에 대한 그들의 신뢰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대체하며, 그들 자신의 말을 성공을 보장하는 우상으로 만듭니다.

IV. 신적 개입: 억눌린 자들을 위해 일어나시는 하나님 (시편 12:5)

시편 12편의 분위기는 5절에서 극적으로 전환됩니다. 위기 상황에 하나님께서 직접 응답하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가련한 자들의 눌림(מִשֹּׁד עֲנִיִּים, 미쇼드 아니임)과 궁핍한 자들의 탄식(מֵאֶנְקַת אֶבְיוֹנִים, 메엔카트 에브요님)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제 일어나(אָקוּם, 아쿰) 그를 그가 원하는 안전한 지대에 두리라 하시도다".

하나님의 개입을 촉발하는 것은 다름 아닌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입니다. '가련한 자'(עֲנִיִּים, 아니임 - 가난한 자, 고통받는 자, 겸손한 자)에 대한 '눌림'(폭력, 약탈)과 '궁핍한 자'(אֶבְיוֹנִים, 에브요님 - 궁핍한 자, 의존적인 자)의 '탄식'(신음)이 하나님의 행동을 이끌어냅니다.

  • '아니임'과 '에브요님'의 의미: 이 용어들은 단순히 경제적 빈곤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힘이 없으며, 착취당하고,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이들을 포괄합니다. 그들은 앞서 묘사된 사회적 부패의 직접적인 희생자들입니다. 이들은 힘 있는 자들에게 짓밟히는 존재로 묘사될 수 있습니다.
  • 하나님의 성품: 이는 성경 전체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성품, 즉 가난하고 억압받는 자들의 보호자, 인간 사회의 시스템이 그들을 외면할 때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는 분으로서의 모습을 강조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제 일어나겠다"(אָקוּם, 아쿰)고 선언하시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일어나다'(קוּם, 쿰)라는 동사는 종종 결정적인 행동, 심판, 구원, 그리고 (신현현이나 거룩한 전쟁의 이미지처럼) 전쟁에 참여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침묵이나 방관의 상태에서 벗어나 능동적이고 강력하게 개입하시겠다는 의지의 표명입니다 . 이는 "누가 우리를 주관하리요?"라고 물었던 악인들의 도전에 대한 직접적인 응답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일어나셔서 억압받는 자들을 그들이 갈망하는 "안전한 지대"(בְּיֵשַׁע, 베예샤 - 구원, 해방)에 두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일어나심의 구체적인 결과, 즉 취약한 이들을 위한 구출과 보호입니다.

시편 12편은 사회 내 진실과 신뢰할 수 있는 언어의 회복이 사회 정의의 확립과 분리될 수 없음을 시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언어적 부패에 대항하여 개입하시는 것은, 바로 그 부패한 언어와 시스템의 결과로 고통받는 이들, 즉 물질적, 사회적으로 억압받는 자들의 부르짖음에 의해 촉발됩니다. 1-4절은 신실한 자('하시딤', '에무님')의 부재가 만연한 기만과 오만으로 이어지는 사회를 묘사합니다. 5절은 하나님의 응답이 거짓말 자체보다는 그 거짓말과 깨어진 시스템의 결과, 즉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아니임', '에브요님')의 약탈당함과 신음에 의해 시작됨을 보여줍니다. 악인들은 바로 취약한 이들을 착취하고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기만적인 언어(2, 4절)를 사용합니다. 따라서 억압받는 자들에게 구원(בְּיֵשַׁע, 베예샤)을 가져오기 위해 "일어나시는" 하나님의 행위는 본질적으로 기만적인 언어에 의해 유지되는 불의한 시스템에 맞서는 것을 포함합니다. 취약한 이들을 위한 정의를 회복하는 것은 거짓된 혀를 침묵시키는 데 필수적인 선행 조건 또는 동반 행위입니다. 불의가 지배하는 곳에서는 진리가 번성할 수 없습니다.

V. 진리의 닻: 하나님의 순결한 말씀 (시편 12:6)

6절은 인간의 기만적이고 이기적인 말(2, 4절)과 하나님의 말씀의 본질을 극명하게 대조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אִמֲרוֹת יְהוָה אֲמָרוֹת טְהֹרוֹת, 이마로트 예흐와 아마로트 테호로트).

이어지는 비유는 이 순결함의 의미를 강력하게 전달합니다. "흙 도가니에(בַּעֲלִיל לָאָרֶץ, 바알릴 라아레츠) 일곱 번 단련한 은(כֶּסֶף צָרוּף... מְזֻקָּק שִׁבְעָתָיִם, 케세프 차루프... 메주카크 쉬브아타임) 같도다."

  • 순결함 (טְהֹרוֹת, צָרוּף, מְזֻקָּק): 이 단어들은 어떠한 불순물, 거짓, 숨겨진 의도도 없는 완전한 순수함과 정결함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으며 참됩니다.
  • 정련 과정: 고대 야금술에서 은을 정련하는 것은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해 강한 열을 가하는 어렵고 복잡한 과정이었습니다. '흙 도가니' 또는 '땅의 풀무'(בַּעֲלִיל לָאָרֶץ)는 땅에 만든 용광로나 도가니를 의미할 수 있습니다.
  • "일곱 번": 숫자 7은 완전함, 온전함, 철저함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완벽하게 시험을 거쳐 검증되었으며, 그 신뢰성은 절대적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의 순결함은 다음과 같은 중요한 의미를 내포합니다.

  • 신뢰성: 하나님의 약속은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습니다. 그분은 말씀하신 바를 반드시 이루십니다. 그분의 말씀은 거짓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기초입니다.
  • 진리: 하나님의 말씀은 악인들이 퍼뜨리는 왜곡과 거짓에 맞서는 궁극적인 실재를 나타냅니다.
  • 가치: 귀하게 정련된 은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헤아릴 수 없이 귀하며 소중히 여겨져야 합니다 (케테프 힌놈에서 발견된 은 두루마리에 새겨진 제사장 축복문 참조 ).

자신들의 혀가 이길 것이라고 장담했지만 결국 하나님의 일어나심 앞에서 공허함이 드러나는 악인들의 말과는 달리, 하나님의 순결한 말씀은 그 자체로 행위하는 힘(performative power)을 지닙니다. 5절에서 약속된 "안전한 지대에 두리라"는 말씀의 효력은 바로 6절에서 묘사된 말씀 자체의 순결함에 의해 보증됩니다. 5절의 하나님의 약속(말씀)과 6절의 그 말씀의 속성(순결함) 묘사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약속이 신뢰할 수 있는 이유는 그분의 말씀 자체가 완벽하게 순수하고 참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6절의 순결함은 단순한 질적 묘사가 아니라, 그 말씀이 약속하는 바를 이루는 능력의 근거가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악인들의 헛된 자랑과는 달리, 전적으로 참되고 불순물이 없기에 그 자체로 효력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VI. 비열함이 존경받는 세상에서의 인내 (시편 12:7-8)

시편은 다시 간구의 형태로 돌아갑니다. "여호와여 그들을 지키사(תִּשְׁמְרֵם, 티쉬메렘) 이 세대로부터 영원까지 보존하시리이다(תִּצְּרֶנּוּ, 티체렌누)"(7절). 시인은 억압받는 자들("그들", 아마도 5절의 '아니임'과 '에브요님')과 예배 공동체("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보호를 확신하며 간구합니다. 이 보호는 부패한 "이 세대"(당대의 악한 시대)의 영향력에 맞서 영원히 지속될 것입니다.

그러나 시편은 현실에 대한 냉철한 인식으로 마무리됩니다. "비열함이(זֻלּוּת, 줄루트) 인생 중에 높임을 받는(כְּרֻם, 케룸) 때에 악인들이 곳곳에서 날뛰는도다(יִתְהַלָּכוּן, 이트할라쿤)"(8절).

  • 활개 치는 악인: 악인들은 여전히 신실한 자들 주위에서 자유롭게 활동합니다. '날뛰다'(הִתְהַלֵּךְ, 히트할레크)는 동사는 그들의 거침없고 위협적인 움직임을 암시합니다.
  • 높임 받는 비열함: 근본적인 문제는 가치의 전도입니다. '비열함'(זֻלּוּת, 줄루트)은 무가치하고 천하며 경멸받을 만한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사람들 사이에서 "높임을 받거나 존경받을 때"(רוּם, 룸 - 높다, 존귀하다), 이는 도덕적 기준이 무너지고 악이 용인될 뿐 아니라 오히려 칭송받는 사회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악인들은 번성하게 됩니다. 이는 '디스토피아'적 현실과 맞닿아 있습니다.

이 마지막 구절들은 신앙의 본질적인 긴장을 보여줍니다.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신실한 말씀(6절)과 개입(5절)에 근거한 그분의 궁극적인 보호에 대한 확신(7절)이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현재 세상에 만연하고 심지어 존경받기까지 하는 악에 대한 명확한 인식(8절)이 공존합니다. 신앙은 이 두 가지 현실, 즉 계속되는 투쟁 속에서의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함께 붙드는 것을 포함합니다.

시편 12편은 외부 갈등의 깔끔한 해결이 아닌, 지속적으로 타락한 세상 속에서의 신앙의 본질에 대한 성찰로 끝맺습니다. 진정한 신앙은 하나님의 궁극적인 보호와 그분의 말씀의 신뢰성을 굳게 믿는 것입니다. 이는 악이 종종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고 사회적 가치가 뒤집힌 현실을 인정하고 그 속을 항해하면서 이루어집니다. 7절은 5-6절의 약속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영원한 보호에 대한 강한 확신을 표현합니다. 그러나 바로 이어지는 8절은 현재의 사회적 현실에 대한 암울한 평가를 내립니다. 악인들은 활동하고 비열함은 존경받습니다. 이 상황이 즉각적으로 변했다는 징후는 없습니다. 시편이 악인들의 즉각적인 패배가 아닌 이러한 병치로 끝나는 것은, 신앙이 세상의 혹독한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그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는 것임을 시사합니다. 따라서 이 시편은 계속되는 투쟁을 현실적으로 묘사하며, 신앙을 갈등의 부재가 아니라 만연한 악의 현존 속에서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신뢰하고("여호와여 도우소서!") 의지하는 것으로 정의합니다.

VII. 결론: 진리 안에서 피난처를 찾고 신실하게 살아가기

시편 12편은 사라져가는 신실함과 만연한 거짓에 대한 절규에서 시작하여, 악인들의 오만한 확신, 억압받는 자들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결정적인 개입, 그분의 말씀의 절대적인 신뢰성, 그리고 도덕적으로 전도된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부르심으로 이어지는 여정을 보여줍니다.

이 고대의 시편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기만적인 언어, 취약한 이들에 대한 착취, 진리에 대한 도전, 비열함의 찬양이라는 역학은 현대 정치, 미디어, 경제 시스템, 온라인 상호작용 등 다양한 영역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

이러한 시대 속에서 신앙인들에게 주어진 도전은 분명합니다. 바로 우리 자신의 삶과 공동체 안에서 '헤세드'(언약적 충성, 능동적 사랑)와 '에메트'(진실함, 신뢰성)를 구현하며, 반문화적인 증인으로 서는 것입니다. 이는 말의 정직성(험담, 아첨, 거짓을 피하고, 말하기 전에 생각하는 신중함)과 취약한 이들을 위한 정의를 향한 헌신을 포함합니다..

무엇보다 혼란스럽고 기만적인 시대에 진리와 희망, 안정의 원천인 하나님의 "순결한 말씀"(6절)에 우리 자신을 단단히 정박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의 거짓된 이야기들에 맞서는 참된 이야기를 제공합니다.

세상이 종종 8절의 암울한 모습과 닮아 보일지라도, 시편의 궁극적인 확신은 하나님의 성품과 그분의 약속(5, 7절)에 놓여 있습니다. 시작의 외침 "여호와여 도우소서!"는 신실한 자들의 근본적인 기도로 남아 있으며,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궁극적으로 당신의 백성을 보존하시며 당신의 진리와 정의를 세우실 것을 신뢰하는 기도입니다. 이 시편은 우리에게 언어적 정직성을 함양하고, 억눌린 자들의 편에 서며, 변치 않는 하나님의 정련된 말씀 안에서 궁극적인 안전과 피난처를 찾도록 격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