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은 무너진 성벽, 폐허가 된 성전, 그리고 희미해진 민족 정체성 속에서 다시 시작해야 했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땅도, 군사력도 아닌 하나님께 의지하는 믿음이었습니다. 이런 시대적 배경 속에 성경 기록자는 짧지만 깊은 의미를 지닌 한 인물, 야베스의 기도를 조용히 삽입합니다. 이는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큰 도전과 위로를 줍니다. 이 묵상집은 야베스의 기도를 통해 ‘고통’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가 어떻게 ‘존귀한 자’가 되었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의지하여 평안한 길을 갈 수 있는지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1장. 야베스의 기도 본문

"야베스는 그의 형제들보다 존귀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하여 그의 이름을 야베스라 하였더라.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역대상 4:9–10)


2장. 히브리어 원어로 본 기도의 의미

  • 복에 복을 더하사 (בָּרֵךְ תְּבָרֵכֵנִי): ‘축복하다’는 단어가 반복되어 매우 강한 강조. 단순한 물질적 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인생의 형통함을 구함.
  • 지경을 넓히시고 (וְהַרְבֵּה אֶת־גְּבוּלִי): 땅의 확장을 넘어 사명, 영향력, 삶의 가능성의 확장.
  •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וִיהִי יָדְךָ עִמִּי): 하나님의 임재, 능력, 보호를 상징.
  •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לְבִלְתִּי עָצְבִּי): 자신의 이름(야베스 = 고통)을 넘어서는 삶을 기도함.

3장. 유대 전통에서의 해석

  • 탈무드와 미드라쉬는 야베스를 토라 학파의 설립자로 봅니다. 즉, 그는 단순히 땅의 복만이 아니라 지혜와 영적 유산을 남긴 자로 해석됩니다.
  • **Rashi(라시)**는 야베스의 기도를 회개와 은혜를 구하는 믿음의 본으로 해석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는 자의 삶이 어떻게 변화될 수 있는지를 강조합니다.

4장. 귀환 공동체를 향한 메시지

야베스의 기도는 단순한 개인의 성공 이야기가 아니라, 포로에서 돌아와 황폐한 삶의 재건을 시작하는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에 주는 메시지입니다.

  • 고통 속에서 시작했더라도, 하나님께 의지하면 새로운 길이 열린다.
  • 과거의 이름과 운명을 넘어서,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인생이 될 수 있다.
  • 기도는 시대를 초월한 회복의 열쇠다.

야베스는 당시 귀환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합니다:

“너희가 황폐한 땅에 돌아왔을지라도, 기도로 다시 시작할 수 있다.”


5장.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주는 교훈

  • 우리 역시 야베스처럼 이름 없는 인생일 수 있습니다. 실패와 아픔, 상처의 이름을 달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 그러나 그 이름은 우리의 ‘정체성’이 아니라 ‘출발점’일 뿐입니다.
  • 야베스의 기도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 이 기도가 오늘 당신의 기도가 되길 바랍니다.


6장. 개인 묵상 질문

  1. 나는 지금 어떤 ‘이름’을 달고 살아가고 있는가? 고통? 실패? 외로움?
  2.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나의 ‘야베스의 기도’는 무엇인가?
  3. 나는 내 인생의 지경이 넓어지기를 구하고 있는가, 아니면 현실에 익숙해진 채 멈춰있는가?
  4. 하나님께 내 인생의 방향을 온전히 맡겨본 적이 있는가?

맺음말

야베스의 기도는 짧지만 깊습니다. 고통 속에 태어난 한 사람이,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새로운 이름을 얻고, 새로운 삶의 길을 걷게 된 이야기입니다. 포로에서 돌아와 삶을 재건해야 했던 유대인들에게, 그리고 오늘날 막막한 현실 속에 서 있는 우리에게, 이 기도는 외칩니다:

“하나님께 의지하라, 그분은 너의 지경을 넓히실 것이다.”

이에 토지가 황폐하여 땅이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식하여 칠십 년을 지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더라.

 

이 구절은 남유다 왕국이 멸망하고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이후,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예언된 대로 땅이 70년 동안 안식을 누렸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한 나라의 흥망성쇠를 넘어, 하나님의 주권과 그분의 말씀의 신실하심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성경적 배경과 의미

역대기 저자는 이스라엘 역사를 하나님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며, 특히 다윗 왕조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언약과 그 성취를 강조합니다. 남유다의 멸망은 그들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시는 과정의 일부였습니다.

예레미야의 예언: 본문은 이 사건이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의 성취라고 명확히 밝히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유다 백성들의 불순종으로 인해 바벨론 포로 생활이 70년 동안 지속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예레미야 25:11-12, 29:10). 이는 하나님의 심판의 기간이었으며, 동시에 회복을 위한 준비 기간이기도 했습니다.

땅의 안식년: 흥미로운 점은 포로 기간 동안 땅이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식하였다"고 기록된 것입니다. 구약 율법에는 매 7년마다 땅을 쉬게 하는 안식년 규정이 있었고 (레위기 25:1-7), 이는 땅의 소산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녔습니다. 학자들은 남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안식년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포로 생활 70년 동안 땅이 그동안 지켜지지 못했던 안식을 대신 누렸다고 해석합니다 (예를 들어, 매튜 헨리 주석은 이를 하나님의 공의로운 징벌로 설명합니다).

유대 전통 해석

유대 전통에서는 이 구절을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의 측면에서 이해합니다. 미드라쉬(Midrash, 유대교 성경 주석)에서는 바벨론 포로 기간을 단순히 징벌의 시간으로만 보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기회를 제공하는 시간으로 해석합니다. 또한, 땅의 안식은 창조 질서의 회복을 상징하며, 인간의 죄로 인해 깨진 조화가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맞춰질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일부 유대 학자들은 안식년 규정을 통해 인간과 땅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탐욕과 착취를 경계하도록 가르치는 하나님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예: 랍비 아브라함 요슈아 헤셸의 저서 "안식").

신학적 의미와 현대적 적용

세상은 하나님의 의지와 섭리로 창조되고 운행되며 하나님의 공의가 무너지면 모든 자연의 질서가 혼돈과 슬픔, 탄식으로 고통받게 된다는 통찰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는 단순히 과거 이스라엘 역사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도 환경 파괴, 불평등, 사회적 갈등 등 다양한 문제들이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훼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결국 우리 자신에게 고통으로 되돌아옵니다. 역대하 36장 21절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공의를 지키는 것이 곧 세상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길임을 깨닫게 해 줍니다.

개인적인 묵상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작은 공간에서부터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내 영향력이 미치는 공간에서 나와 함께하는 모든 생명이 평안과 사랑이 함께하는 공간에 있도록 기꺼이 하나님의 공의를 지키는 파수꾼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는 거창한 일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정직하고 정의롭게 행동하며, 주변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하는 작은 실천에서 시작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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